영화"노무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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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UR PRESIDENT, 2017

    '노무현입니다'가 개봉 첫날 역대 다큐멘터리 오프닝스코어를 경신한 데 이어 개봉 3일 만에 손익분기점인 20만 관객을 돌파했다.

    OUR PRESIDENT)는 대한민국의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로서, 2002년 대선 당시 새천년민주당 경선 과정과 대통령과 함께했던 사람들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광장에서 사람들이 노랑풍선을 들고 노무현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우리들의 노력이 현실이 되는 순간.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노무현입니다'는 개봉 첫 주말(5월 26일(금)~28일(일))까지 50만 9945명을 동원해 누적관객 59만(596,008명)을 기록했다. 이로써 개봉 3일 만인 27일 손익분기점을 넘게 됐다.

    25일 개봉한 '노무현입니다'는 개봉 첫날 7만8397명의 관객을 동원해 역대 흥행 다큐멘터리 오프닝스코어 1위에 올랐다. 첫 주 주말에도 전체 박스오피스 2위,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고수하며 흥행 돌풍을 이어갔다.

    기존 다큐멘터리 최고 흥행작인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누적관객 480만 명)는 개봉 11일째에 관객 20만 명을 돌파한 바 있어 이는 이례적인 결과다.

    '노무현입니다'는 故 노무현 대통령 다큐멘터리로, 지방선거에서도 번번이 낙선한 만년 꼴찌 후보 노무현이 새천년민주당 국민경선에서 지지율 2%로 시작해 대선후보 1위의 자리까지 오르는 드라마틱한 과정을 담아냈다. 측근 39명의 진심이 담긴 인터뷰를 통해 정치인 노무현이 아닌 인간 노무현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 호평을 받고 있다.

     

    관객들은 “그동안 많은 매체에서 보여진 영상을 짜깁기한 것을 상상하셨다면 기대 그 이상입니다! 25일 개봉 첫날 첫 상영 9시 25분 잘 보고 갑니다”(네이버 실관람객 100k****), “경북지역 소도시에서 개봉 첫날 평일 조조로 그렇게 많은 분들이 같이 관람할 줄을 몰랐습니다. 경선 과정이라는 기승전결이 뚜렷한 구성이라 상업영화만큼이나 박진감이 넘칩니다.

     

    뭐든 이루어지던 마법 같은 02년. 마지막 노래를 흥얼거리며 길거리를 거닐며 후보인사를 건네던 뒷모습이 잊히지 않네요”(다음 noopy****), “50살 먹은 남자 셋이 극장 맨 앞줄에 앉아서 눈물에 셔츠 칼라가 젖을 정도로 울다 왔어요. 슬프지 않은데 그냥 계속 눈물이 나네요. 잘 보고 왔어요”(다음 son***) 등 뜨거운 찬사를 보내고 있다.

    특히 “오늘 하루에 두번 영화관에서 보고 왔어요”(다음 정**), “같은 아파트 사는 분들과 시간 맞춰 함께 관람했습니다. 끝나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며 소중한 시간 보냈습니다”(네이버 쁘니****) “주말을 맞아 부모님 모시고 아내와 아이들 모두 데리고 관람했습니다. 중학생 아들도 같이 눈물 흘리며 보았습니다. 강력 추천합니다”(네이버 ando****) 등 개봉 첫 주부터 재관람, 단체관람, 가족 관람 열풍이 이어지고 있다. 
    사실 보는 내내 짠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습니다.

     

    주된 이야기는 노무현 후보가 2002년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새천년민주당(후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서면서 겪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나, 노무현과 인연이 있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70년대 사법고시 합격 후 변호사 시절부터 2009년 투신 서거에 이르기까지 그의 인생 전반을 네 파트로 나눠 다루고 있다.

     

    영화는 1988년 노무현 변호사가 그 해 13대 총선에서 당선되어 국회에 입문했던 모습부터 시작된다. 이후로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사계》가 흐르는 가운데, 타임라인이 빨라지면서 노무현의 정치경력을 훑고 지나간다. 노무현 의원은 1990년 3당 합당을 겪고 다음 총선인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 낙선한다. 이후 1995년 제1회 지방선거에서 부산 시장 선거에 나서나 이 역시 낙선하고 이듬해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종로구에 출마하나 낙선한다. 그러나 1998년 재보궐 선거에서 종로구 선거에 다시 출마하여 당선되고, "다시 일하게 될 수 있어 기쁘다"는 그의 당선소감과 함께 타임라인이 멈추며 영화 제목이 스크린에 떠오른다.

     

    노무현 의원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역주의를 타파하겠다는 메시지를 앞세워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지역구인 종로구를 버리고 부산 북구·강서구 을에 출마한다. 그러나 선거유세장에서 상대 후보의 지역감정 조장에 부닥치고, 결국 낙선하면서 지역주의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한다. 노무현 후보의 "살면서 이보다 더 참담한 일을 많이 겪는다"는 위로와 함께 선거캠프는 폐쇄된다. 그리고 인터넷상에서는 그런 그에게 '떨어질 거 알면서 왜 갔냐'는 이유로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게 된다.

     

    경선 과정은 2001년 이듬해 대선을 앞두고 새천년 민주당은 사상 최초로 대국민경선제를 도입하고, 노무현은 대통령 후보로 나선다. 그러나 당의 비주류였던 그에게 여당의 대세였던 이인제 후보를 이기리란 쉽지 않다는 시각이 팽배했고, 그를 경쟁 세력으로 보는 시각도 없다시피 한 상태였다.

     

    2002년 3월, 제주에서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첫 경선이 개최된다. 당시 후보로는 50%대의 지지율을 자랑하던 이인제 외에도 김근태, 한화갑, 김중권 등 쟁쟁한 후보들이 출마한 상태였던 것에 반해, 노무현 후보는 '군소 중에서도 군소'라고 말할 수준이었다. 노무현 후보는 "이인제 후보로 승리가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을 던지는 연설을 한 뒤 3위의 성적을 받고 제주 경선을 마친다. 다음 경선인 울산 경선에서는 "영남 후보로서 영남에서 이기고 오면 그것으로 광주 사람들을 설득하겠다", "반드시 동서화합을 이뤄내겠다"는 연설을 하며 이인제 후보를 누르고 1위로 올라선다. 이어 광주 경선에서는 노사모의 대단한 활약과 함께 예상을 뛰어넘는 득표로 전체 득표수 1위를 지킨다.

     

    그러나 대전 경선부터는 이인제 후보의 초강세에 밀리게 된다. 충남 경선에서 이인제 후보는 "광기의 돌풍이 일어나고 있다"며 노무현 후보의 초반 강세를 차단하고, 이인제 후보가 노무현 후보의 두 배 이상을 득표하는 몰표와 맞물려, 노무현 후보는 이인제 후보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위기에 봉착한다. 그 뒤를 이은 곳은 강원 경선, 노무현 후보는 이인제 후보를 7표 차로 근소하게 제쳤으나 종합순위로는 2위에 머무른다.

     

    그런데 한화갑 후보와 김중권 후보가 충청 몰표를 이유로 후보직에서 사퇴하면서 상황은 이인제 캠프에게 불리하게 돌아간다. 음모론과 후보사퇴설로 이인제 캠프가 흉흉한 가운데 노 후보로서는 반드시 이겨야 할 인천 경선이 열린다. 이인제 후보는 경선에서 급진좌파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이회창 대선후보와 함께 노무현 후보 공격에 나서고, 언론 국유화 및 폐간 의혹, 심지어 권양숙 여사 친부의 남로당 활동 경력까지 제기한다. 이에 노무현 후보는 "음모론, 색깔론, 근거 없는 모략은 중단해 달라"라고 발언하고, 아내에 대해서는 "(사랑하는) 아내를 제가 버려야겠느냐", 언론 국유화 시도 역시 부정하되 언론의 장악에는 맞서 싸우겠다며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연설로 호평을 사고, 다시 1위로 올라선다.

     

    뒤이어 치러진 전남, 서울 등의 경선에서도 1위의 자리를 지키며 민주당 대선후보로 최종 결정된다. 최종 경선장의 환호는 광화문 네거리의 대통령 출구조사 발표, 대통령 당선을 알리는 신문, 그리고 2003년 국회에서의 취임식으로 이어진다. 시민들의 환호 속에 대통령 리무진에 타서 손을 흔드는 그의 풍경은 시민들의 애도 속에 그를 실은 장의차의 풍경으로 오버레이되며 끝을 맺는다.

     

    노무현의 남자들이라 함은 문재인(현 대한민국 대통령), 안희정(충남도지사),유시민(전 복지부 장관, 현 작가) 세 사람은 빼놓을 수가 절대 없습니다.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인터뷰를 들어보면 노무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고 지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제작비 6억 원으로 만든 영화, 4번의 낙선, 지지율 2%의 꼴찌 후보에서 국민의 대통령이 되기까지 2002년 전국을 뒤흔들었던 바보 노무현의 대 역전 드라마, 2002년 월드컵보다 더 흥미진진하게 몰입할 수 있는 스토리/유시민, 안희정, 이광재, 강원국 외에도 국정원 직원, 운전기사 등 생생한 증언을 통해 아무도 몰랐던 노무현의 진짜 이야기를 보여줍니다./2017년 전주 국제영화제의 전주시네마 프로젝트 선정작으로, 중앙대 영상학과 교수인 이창재 감독은 전작 <사이에서><길 위에서>로 개봉 연도 다큐멘터리 최고 흥행을 기록하였습니다.

     

    노무현입니다의 영화는 클라우드 펀딩으로 자금을 모았고 열성적으로 투자가 이뤄져서 일찌감치 펀딩에 2배가 넘는 금액인 48,900만 원에 성공하였습니다. 펀딩을 하면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시민의 힘으로 만년 꼴찌 후보였던 인간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듯이, 제작 초기 개봉도 장담할 수 없었던 영화 <노무현입니다>도 시민의 힘으로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펀딩을 통해 마지막도 시민들과 함께 완성하고 싶습니다. 영화 <노무현입니다> 펀딩은 2017년 5월 23일부터 24일까지 이틀 동안 진행됩니다.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몰랐던 '사람 노무현'을 위해, 가장 의미 있는 날을 시작일로 정했습니다.

    큰 금액의 투자가 아닌, 여러 분들이 참여와 응원이 영화 <노무현입니다>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적어도 상영하는 곳이 없어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이 없도록, 펀딩 금액은 더 많은 홍보를 위해 사용될 예정입니다. '인간 노무현'의 매력을 많은 분들이 느낄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라고 말을 전합니다.

     

    <영화 속 대사 중에서>

    “돈 없이 정치할 순 없나? 이게 나한테 가장 숙제다.
    돈 안 드는 정치라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거냐. 그러시면서 우시는 거예요.”
    - 서갑원 노무현 대선캠프 참모


    “낭랑하고 카랑카랑하면 목소리 말소리, 항상 머릿속에서 안 떠나요.”
    - 이화춘 당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요원

    “노무현 대통령은 사랑스러운 분이었고요, 뭔가를 해주고 싶은 사람이었어요.”
    - 유시민 작가

    "머릿속에서 늘 유서를 생각하고 계신데 우리는 그를 아주 외롭게 두었다.
    이게 유서를 볼 때마다 느끼는 아픔이에요."
    - 문재인 대통령

    2002년,
    새천년민주당은 대한민국 정당 최초로 국민 참여 경선제를 도입한다.
    당의 유력 정치인들 사이에서
    지지율 2%의 꼴찌 후보 노무현도 출사표를 던진다.

    제주 경선 3위를 시작으로, 울산 경선 1위로 선전한 노무현은
    ‘민주화의 성지’ 광주에서 영남 출신 핸디캡을 극복하고 호남 후보를 이기며 노풍을 일으킨다.
    오랜 지역감정까지 넘어선 노무현 바람은 그야말로 전국을 뒤흔드는 태풍이 되는데…
    꼴찌 후보 노무현은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국민 후보가 되었을까?

     

    이영화의 감독은 이창재 감독입니다.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2002년 경선, 그 자체를 본다면 한 사람의 국회의원의 지지도 없이, 계파도 없이, 오로지 노무현이라는 콘텐츠와 시민들의 힘이 역사를 바꾼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를 '헬조선'이라고들 이야기하지만 우리에게 희망의 씨앗이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저런 현실이 있었지. 인간, 휴머니즘, 진실에 대한 콘텐츠를 보여주고 관객들에 힘이 날 수 있는 이야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故 노무현 대통령의 어룩들입니다.

    "간섭과 침략과 의존의 상징이던 용산 미군 기지가 우리 국민들의 손에 돌아옵니다."
    2004년 9월 5일 MBC 인터뷰
    "우리가 국민 주권시대, 인권존중 시대로 간가고 하면 그 낡은 유물(국가보안법)은 폐기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칼집에 넣어서 박물관으로 보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2005년 8월 25일 KBS 국민과의 대화
    "지역주의 극복은 내가 대통령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권력을 통째로 내놓은 방나도 검토하겠다."
    2006년 제주 4.3 사건 희생자 위령제
    "자랑스러운 역사든 부끄러운 역사든 역사는 있는 그대로 밝히고 정리해야 합니다. 특히 국가 권력에 의해저질러진 잘못은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는다."
    2007년 9월 17일 지역혁신 바람회 개막 시 축사
    "지역혁신, 균형발전이 최상의 국가발전전략이다.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 그리고 더 크게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전국 모든 지역이 다 함께 수준 높은 삶을 누리는 행복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
    2007년 10월 2일 남북정상회담 위해 군사분계선 넘으며
    "제가 다녀오면 또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마침내 이 금다능디 선도 점차 지워질 것입니다."
    2008년 2월 24일 대통령 퇴임 고별 만찬
    "폐배를 받아들여야 민주주의가 이뤄진다. 강은 반드시 똑바로 흐르지는 않으며 굽이치고 좌우 물 길을 ㄹ바꿔가는 게 세상 이치지만 그러나 어떤 강도 바다로 가는 것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2008년 2월 25일 봉하마을 귀향인사
    "지난 5년간 대통령직을 좀 잘했으면 어떻고 못했으면 어떠냐, 그냥 열심히 했으니 이쁘게 봐 달라. 정말 마음 놓고 한마디 하고자 한다. 야~기분 좋다."
    2009년 4월 22일 홈페이지
    "저는 이미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수렁에 함께 빠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2009년 5월 23일 유서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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